점심을 먹고 오전에 그냥 지나쳤던 슈테판 성당을 구경하러 갔다.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구 시가지의 중심이며 높은 남측탑은 비엔나 어디에서도 보여서
길을 잃어버리면 이 탑을 보고 찾아오면 된다.
비엔나 사람들이 타지로 갔다가 돌아올때면 이 탑을 보고
집에 돌아옴을 느낀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20개국의 제공 가능한 언어중에한국어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테레사 수녀의 젊을 때 사진.
성당 내부는 고딕양식의 특징 답게 높고 장엄하다.
이 성당 지하 카타콤에는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2,000여구와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뒤쪽 2층에 보이는 파이프 오르간이다.
일요일이면미사때 이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의 내부 모습들>
자율적으로 0.65유로를 내고 기도를 위해 초를 사서 놓는다.
성당을 나와서 다시 슈페판 광장으로 나오면
이렇게 분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행위 예술로 얼마를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렇게 분장하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하겠다.
거리의 화가.
오스트리아는 예술의 도시로 거리에서 음악도 많이 공연한다.
그 중에는 꽤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쉔브룬 궁전을 가기 위해서 슈페판 광장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쉔브룬 궁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지하철 쇤브룬 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쉔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궁전이었다.
총 1,441개의 방이 있으며 그중에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약 40개 뿐이다.
건물의 중앙 부분은 의전실이나 연회를 하는 곳이며
동쪽채에는 마리아 테레자와 부군 프란시스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살았으며
나폴레옹도 거처를 삼은 일이 있다.
서쪽채에는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가 살았었다.
이 궁전의 전체 면적은 2평방 킬로미터나 되며 그 규모는 바티칸 공국의 4배가 된다.
궁전전체의 면적은 대부분 정원이며 동물원, 식물원도 있다.
입구에는 삼성 모니터가 협찬하고 있었다.
입장요금은 8유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계도.
이중에 주목할 인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있다.
18세기 자타 공인 유럽 최대의 왕조인 합스부르크는 직계와 방계가
모두 유럽왕실의 주축으로 건재한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일한 상속녀이었다.
아버지인 카를 6세가 죽고 모든 영토를 물려받자 여성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고
정한 살리카법으로 각국이 이의를 제기하여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일어났으나 아헨조약에서 각국의 승인을 얻어 냈다.
전쟁중에 남편 프란츠 1세를 황제로 세워 공동 통치자가 되었으나
남편에게는 정치적 능력이 없어 그녀가 모든 국정을 담당했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부역의 경감, 수도원 원영지의 몰수, 교육제도의 개혁 등에 성과를 거두었다.
자녀를 16명이나 두었으며, 그중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녀의 딸이었다.
불행히도 왕궁내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각가지 화려화고 고급스러운 실내와
비운의 왕비 엘리자베트(씨씨)와
어린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곳,
마리앙뚜아네트가 어린시절을 보낸곳등 각방과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있는데 사진이 없어 블로그에 올릴수 없어서 무척 아쉽다.
<쉔브룬 궁전의 정원 모습들>
쉔브룬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건축되었으나,
그에 비에 손색이 없는 궁전이라고 한다.
쉔브룬 궁전의 정원모습.
아직 이른 3월의 초봄이지만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더 멋진 풍경이 될 것 같다.
쉔브룬 궁전 앞동산을 올라가는 두중 찍은 쉔브룬 궁전
넓은 프랑스식 정원과 함께 비엔나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쉔브룬 궁전과 비엔나 시가지가 내려보이고 큰 연못이 있는 이곳에서 주로
황제와 황비는 아침을 먹었다고 한다.
파노라마 사진
쉔브룬 궁전의 이름의 뜻인 아름다운(Scheon) 샘(Brunnn) 은 이곳이 처음에 합스부르크 사냥별장이었는데,
헝가리 공격으로 파괴된것을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샘에서 유래하였다.
쇈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자 제국의 흥망이 함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왕조의 영광과 함께 비엔나를 점령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사령부였기도 하였으며,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퇴위한 오욕의 역사도 함께 있다.
그후 2차대전에는 러시아군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종전후에는 영국군 사령부였다.
쉔브룬 궁전의 출입구..
쉔브룬 궁전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한국어 인삿말이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관계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데 이곳을 방문한 가장
높은 지위의 정치인은 이회창씨 정도라고 한다.
쉔브룬은 정몽준씨가 한번 방문한 인연으로 이 한국어 입간판이 쉐워졌다고 한다.
쉔브룬 궁전을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주로 여기서 찍는다고 해서 나도 한컷!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시가지에는 트램이 다닌다.
이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 궁전을 갔다.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KISS"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이탈리어로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을 가진 이 궁전은 터키 전쟁의 영웅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었고 나중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미술품 전시장으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고 천천히 본다면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작품의 양이 많다.
역시 널찍한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게르만, 슬라브, 라틴의 3대 문화권이
섞여서 매우 다양한 문화가 꽃핀 나라이다.
또한비엔나는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여년동안
수도로 삼은 도시로 많은예술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 미술관 역시 내부는 촬영금지였다.
하지만 일개 가문이 수집한 예술품은 그 작품의 수준이 매우 높아
24시간 경찰과 경비가 삼엄하고, 이 곳의 미술품이 도난이 된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서야 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문외한인 나도 나폴레옹이 앞발을 든 흰말을 타고 있는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을 진품으로 여기서 보고 감동을 느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장기 대여하였으나 원래 진품은 이 미술관 소유라고 한다.
이제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사랑의 묘약 오페라를 보러 간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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