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보기전에자허호텔에 들러서 커피와 케익을 먹기로 했다.

저번 여행기에 쓴것 처럼 오스트리아 양대 카페로는 카페 데멜과 자허가 있는데

비엔나의 최고의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 끝쪽, 국립오페라 극장 건너편에

카페 자허와 호텔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내가 갔을 때 호텔1층에 중년의 노인이 피아노를 치면서 멋진 실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이 없다. 안찍은 건지 지워진건지 아쉽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자허토르테로 1832년 창업자인 프란츠 자허가

메르니히 재상에게 독특한 맛의 초코릿 케익을 만들어 극찬을 받아서

이 케익에 자기의 성인 ' Sacher'를 붙였다고 하는 케익이다.

초콜릿 스펀지 케익 사이에 살구쨈을 바르고

맨위에 슈거파우더를 뿌린 초콜릿 조각과 생크림이 곁들어 나오는 일종의 초콜릿 케익이다.

카페 데멜과 오리지널 시비가 붙어 법정 소송끝에 자허의 승리가 되어서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한다.

맛은 입안에서 그냥 스르르 녹으면서 진한 맛이 난다.


드디어 기다리던 국립오페라 극장인 슈타츠 오퍼로 갔다.

사람들이 붐비며, 나름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갔다.

이 극장은 거의 매일 매진이어서 시작 3시간전 부터 입석으로라도

오페라를 보려고 줄을 서는 400~500명의 사람들이 붐빈다.


극장 로비에서는 방송국에서 나온듯 중계를 하고 있었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2차 대전때 폭격으로 부서진 이 극장의 벽돌들을 비엔나 시민들은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가

전쟁이 끝나고 재건할때 집집 마다 들고 나와서 다시 지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비엔나 시민들이 얼마나 이 건물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공연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원래 30유로 짜리인 내자리도 표가 없어서 암표로 99유로를 줘서

겨우 들어와 앉을 정도로 구하기 힘든 슈타츠오퍼 공연이다.

세계 최정상의 빈필하오닉과 최정상의 오페라 가수들이 펼치는 공연이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공연중 사진 촬영은 금지라 이렇게 끝나고 커튼콜 할때 찍을 수 있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 오페라로 각자 개인좌석앞에 있는 작은 모니터로

영어나 독일어 자막을 선택하여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공연에서는 슈타츠오퍼 전속 성악가인 한국인 테너 정호윤씨가

군대 장교 벨코레 역을 맡았다.

물론 주인공역인 네모리노나 여주인공역인 아디나 역은 절대 동양인이 맡을 수 없을것이지만

한국인이 이곳 슈타츠 오퍼 전속 성악가라는 자체가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사랑의 묘약은 단순한 스토리지만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은

누구나 한번 이상은 들어본 유명한 아리아 이어서 마지막 2막 2장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이 노래를 마쳤을 때는 온 극장이 무너질 정도로

박수와 환호가 대단했다.

관중들의 환호에 극중간에 결국 주인공이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

다음 장면이 진행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처음 당하는 광경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점잖게 앉아 있던 오스트리아 시민들이 전부 기립하고 일어나

부라보, 브라바 를 외치면서하고 박수를 끊이지 않게 치는 것이었다.

(브라보는 이태리어로 남자 독주후 갈채할때는 브라보 여자일 경우 브라바 단체로 끝났을 때는 브라비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예의상 그런줄 알았더니 장난이 아니었다.



주인공들도 몇번이나 나와서 커튼콜에 답례를 하였다.

서너번 사람들도 바꿔서 자리도 바꿔서 계속 나와야 했다.

사실 오페라나 클래식은 내가 좋아 하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확실이 이런 현장을 와서 보는 것은 많이 달랐다.

같이 간 일행중에는 슈타츠오퍼에서 빈필하모닉 연주의 오페라를 듣는것이

평생 소원이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도 이 공연 이후에

내 아이팟에는 클래식 음악이 가득 차 있다.


2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늦은 시간이라 식당도 없어서

집쪽으로 오다가 발견한 카페였다.

문닫을시간을 넘어서 까지마음씨 착한 이 아가씨는 우리에게 간단한 요기거리를

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한컷 찍었다.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밤은 첫날 왔던 샴락 카페에서 마무리 했다.

어느덧 주인과도 친해져 같이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마무리 했다.


다음날 출국을 위해 도착한 빈국제 공항


공항은 아담한 크기에 깨끗한 외관이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벤츠 택시.

오스트리아는 독일과의 관계이기도 하고 유럽이기도 해서

BMW, OPEL등 독일차들을 많이 볼수 있다.

물론 현대차도 조금씩 늘어 나는 추세이다.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 내부 모습들>









마지막 여행지인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컷.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나라이며,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던 나라여서 나름 기대를 하고 간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기 끝>


점심을 먹고 오전에 그냥 지나쳤던 슈테판 성당을 구경하러 갔다.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구 시가지의 중심이며 높은 남측탑은 비엔나 어디에서도 보여서

길을 잃어버리면 이 탑을 보고 찾아오면 된다.

비엔나 사람들이 타지로 갔다가 돌아올때면 이 탑을 보고

집에 돌아옴을 느낀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20개국의 제공 가능한 언어중에한국어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테레사 수녀의 젊을 때 사진.


성당 내부는 고딕양식의 특징 답게 높고 장엄하다.


이 성당 지하 카타콤에는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2,000여구와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뒤쪽 2층에 보이는 파이프 오르간이다.

일요일이면미사때 이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의 내부 모습들>











자율적으로 0.65유로를 내고 기도를 위해 초를 사서 놓는다.



성당을 나와서 다시 슈페판 광장으로 나오면

이렇게 분장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행위 예술로 얼마를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렇게 분장하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하겠다.


거리의 화가.

오스트리아는 예술의 도시로 거리에서 음악도 많이 공연한다.

그 중에는 꽤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쉔브룬 궁전을 가기 위해서 슈페판 광장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쉔브룬 궁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지하철 쇤브룬 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쉔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궁전이었다.

총 1,441개의 방이 있으며 그중에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약 40개 뿐이다.

건물의 중앙 부분은 의전실이나 연회를 하는 곳이며

동쪽채에는 마리아 테레자와 부군 프란시스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살았으며

나폴레옹도 거처를 삼은 일이 있다.

서쪽채에는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가 살았었다.

이 궁전의 전체 면적은 2평방 킬로미터나 되며 그 규모는 바티칸 공국의 4배가 된다.

궁전전체의 면적은 대부분 정원이며 동물원, 식물원도 있다.


입구에는 삼성 모니터가 협찬하고 있었다.

입장요금은 8유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계도.

이중에 주목할 인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있다.

18세기 자타 공인 유럽 최대의 왕조인 합스부르크는 직계와 방계가

모두 유럽왕실의 주축으로 건재한합스부르크 가문의 유일한 상속녀이었다.

아버지인 카를 6세가 죽고 모든 영토를 물려받자 여성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고

정한 살리카법으로 각국이 이의를 제기하여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 일어났으나 아헨조약에서 각국의 승인을 얻어 냈다.

전쟁중에 남편 프란츠 1세를 황제로 세워 공동 통치자가 되었으나

남편에게는 정치적 능력이 없어 그녀가 모든 국정을 담당했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부역의 경감, 수도원 원영지의 몰수, 교육제도의 개혁 등에 성과를 거두었다.

자녀를 16명이나 두었으며, 그중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녀의 딸이었다.

불행히도 왕궁내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각가지 화려화고 고급스러운 실내와

비운의 왕비 엘리자베트(씨씨)와

어린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곳,

마리앙뚜아네트가 어린시절을 보낸곳등 각방과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있는데 사진이 없어 블로그에 올릴수 없어서 무척 아쉽다.

<쉔브룬 궁전의 정원 모습들>






쉔브룬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건축되었으나,

그에 비에 손색이 없는 궁전이라고 한다.



쉔브룬 궁전의 정원모습.

아직 이른 3월의 초봄이지만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더 멋진 풍경이 될 것 같다.


쉔브룬 궁전 앞동산을 올라가는 두중 찍은 쉔브룬 궁전


넓은 프랑스식 정원과 함께 비엔나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쉔브룬 궁전과 비엔나 시가지가 내려보이고 큰 연못이 있는 이곳에서 주로

황제와 황비는 아침을 먹었다고 한다.


파노라마 사진






쉔브룬 궁전의 이름의 뜻인 아름다운(Scheon) 샘(Brunnn) 은 이곳이 처음에 합스부르크 사냥별장이었는데,

헝가리 공격으로 파괴된것을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샘에서 유래하였다.


쇈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자 제국의 흥망이 함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왕조의 영광과 함께 비엔나를 점령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사령부였기도 하였으며,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퇴위한 오욕의 역사도 함께 있다.

그후 2차대전에는 러시아군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종전후에는 영국군 사령부였다.


쉔브룬 궁전의 출입구..


쉔브룬 궁전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한국어 인삿말이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관계는 그리 활발하지 못한데 이곳을 방문한 가장

높은 지위의 정치인은 이회창씨 정도라고 한다.

쉔브룬은 정몽준씨가 한번 방문한 인연으로 이 한국어 입간판이 쉐워졌다고 한다.


쉔브룬 궁전을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주로 여기서 찍는다고 해서 나도 한컷!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시가지에는 트램이 다닌다.

이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 궁전을 갔다.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KISS"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이탈리어로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을 가진 이 궁전은 터키 전쟁의 영웅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었고 나중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미술품 전시장으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고 천천히 본다면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작품의 양이 많다.


역시 널찍한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게르만, 슬라브, 라틴의 3대 문화권이

섞여서 매우 다양한 문화가 꽃핀 나라이다.

또한비엔나는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여년동안

수도로 삼은 도시로 많은예술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 미술관 역시 내부는 촬영금지였다.

하지만 일개 가문이 수집한 예술품은 그 작품의 수준이 매우 높아

24시간 경찰과 경비가 삼엄하고, 이 곳의 미술품이 도난이 된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서야 될 정도로 대단하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문외한인 나도 나폴레옹이 앞발을 든 흰말을 타고 있는

유명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을 진품으로 여기서 보고 감동을 느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장기 대여하였으나 원래 진품은 이 미술관 소유라고 한다.

이제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사랑의 묘약 오페라를 보러 간다.

<다음편에 계속>

황궁문(Burgtor)

링도로와 접혀 있는 대형 석문으로 1813년 라이프찌히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기념으로

1821년에서 1824년 3년간에 걸쳐 오스트리아 건축가 Peter Nobile이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5개의 문은 황실가족만 출입할 수 있었던 문이라고 한다.


호프부르크 궁의 전체 모습

호프부르크는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 가의 본궁이자 겨울 궁전이다.

다른 나라의 왕궁과 다르게 이곳은 건물 집합장소같이 만들어진 곳이다.

어디가 중심인지 어디가 적절한 출입구인지 구분이 없다.

이것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멸망할때까지 선대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방은 후대 통치자가 사용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에 시대마다 유행하는 양식으로 건물을 계속 증축하다 보니

모양이 이상해진 것이다. 그래서 방이 2,600개나 된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과 대통령 집무실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노이에 부르크(Neue Burg)

1881년부터 만들어지기1913년에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완성된

신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에는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1918년 왕가의 종말을 맞았다.

독일어로 궁전은 부르크(Burg)라고 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있었던 곳이다.

가운데 청동기마상은오이겐 장군상이다.

합스부르크 통치시절 가장 강력한 군대와 넓은 영토를 소유하게 한 사보이공국 출신의 장군이다.


신왕궁앞에 있는 영웅광장(헬덴플라츠)의칼 장군의 기마상

나폴레옹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장군이다.


영웅광장에서 바라보이는 저기 높이 보이는 것은 시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웅광장은 1938년 3월 독일의 히틀러가 영웅광장이 내려보이는

노이에 부르크궁전의2층 발코니에 나타나서 ' 이제 오스트리아는 독일 제국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오스트리아 합병을 선언한 군중대회 장소가 되었다.




당시 집회에 20만에 달하는 오스트리아 인들이 모여서 숨죽여 흐느꼈다고 한다.

외세를 물리친 장군들의 기마상들 앞에서 역사는 그렇게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갔다.

합병과 관련된 재밌는 또다른 일화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합병을 위해 비엔나에 왔을 때 묵은 호텔이 임페리알

호텔이었는데 오래전 히틀러가 미술공부를 위해 비엔나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한곳도 바로 임페리알 호텔이었는데

1938년 그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러 와서 바로 그 호텔에서 묵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명물 휘아커(Fiaker)이다.

휘아커라는 말은 프랑스에서 유래된 말로 파리의 생휘아커(St Fiacre) 호텔에서

영업용 마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휘아커에 대한 영업허가가 처음 나온것은 1693년이며 오늘까지 3백여년을 승객 운반수단으로

봉사해왔으나 오늘날 고작 수십대의 휘아커가 영웅광장, 슈테판 성당옆, 국립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휘아커가 큰길을 다닐 때에는 모든 차량에 우선하여 다닐수 있고

그 다음에 전차가 다닐수 있다.

호프부르크 궁전 행랑길에 있는 기념품 상점들


외국가면 그 나라 도시 이름이 적혀진 접시를 사는게 요즈음에 재미들인 것인데

유럽 여행은 최소한의 소지품으로 도보 여행도 많고

나는 이미 소지한 카메라만 2개라 못사가지고온게 아쉽다.

가져온 거라곤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하나가 고작이다.ㅎㅎ..




인 데아 부르크라고 부르는 광궁내부이다.

넓직한 광장 가운데 기념상은 프란시스 황제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2세이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1세가 된다.

이곳에는 미하엘관, 황제의 내전, 알베르티나 소묘 미술관, 스페인 승마학교,

왕궁예배당,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등이 있지만 시간관계로

건물 내부는 들어가지 못한것이 아쉽다.


기념상 하단에 쓰여진 글은 라틴어로 '나의 백성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란시스 황제는 상당히 인색한 인물이었으며 자기 욕심만 부렸다고 한다.


슈바이처토르(스위스의 문)

1552년 르네상스 스타일의 문으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스위스 용병으로

이곳을 지키게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을 통과해야 왕실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문에는 들어 올릴수 있는

도르레 장치가 있었는데 지금도 문 아치 윗쪽 양옆에 보인다.

지금은 보도블록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해자를 파서

침입자가 못들어 오게 만들었다고 한다.

문을 통과하면 왕실교회가 있고 이 왕실 성당에선 지금도

그 유명한 빈소년합창단의 음악을 일요일 미사때마다들을 수 있다고 한다.


호프부르크 미하엘문 입구의 사자상





미하엘러 문은 콜마크트 광장을 거쳐 왕궁으로 들어가는 최단 거리에 있다.

미하엘러 광장과 접한 미하엘러 문은 18세기에 만들어 졌으며

문양옆에는 요괴를 물리치는 의 4개의 헤라클레스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왕궁을 나와서 본 건물..

교회와 아파트인것 같은데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다.


이 건물은 우리 가이드가 특별히 소개시켜준 집이다.

멀리서 보면 동판이 집벽에 붙어 있다.


동판에 새겨진 말의 뜻은 이집에 '요셉 하이든이 1750년에 살았노라'라는 뜻이고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덴은 비록 이집에 2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 동안에 그 유명한

놀람교향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하이든은 음악회를 자주 찾던 귀부인들은 음악을 이해하기 보다는

귀부인들이 서로 만나서 즐겁게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교의목적으로 음악회를 참석하다보니

연주가 시작되면 너나 할것 없이 으레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고 이 부인들을

놀려줄 방법을 궁리하다 이 교향곡을 작곡했고,

그의 뜻대로 이곡이 발표되던날 잔잔하고 느린 자장가처럼 진행되는

음악을 듣으면서 졸던 귀부인들이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팀파티 연주에 깜짝 놀라게 되고

그 후로는 이 곡에 놀람 교향곡이란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왕궁을 보고 나와서 비엔나에서 비엔나 커피한잔은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들른

데멜 카페를 들러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이 카페는 유명해서 오스트리아 뿐아니라 미국, 일본등 해외에도 진출해 있다.

비엔나에서 카페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두카페가 카페 자허와 카페 데멜이라고 한다.

Cafe Demel은 1786년 문을 연 2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집이다.


케익도 많고 종류도 많았지만 곧 점심을 먹으로 가야 되는 시간이라

커피만 시켰다.


이 카페는 약 200년전에는황실전용 베이커리로 황실에 디저트를 제공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도 줄줄이 비엔나도 없다!!!

다만 예전 황제들이 마시던 커피는 아인스페너, 일반 국민들이 마시던 커피는

멜랑제라고 하며 이집에서는 4유로 우리돈 6,000원 가량 한다.


이 카페는 빵을 만드는 주방을 통유리로 해서 모두 볼 수 있게 해놨지만,

주방은 촬영금지이다.

고풍스러운 실내이며, 커피를 즐기는 오스트리아 귀부인을 보았는데

의상이며 분위기가 완전히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커피는 에스프레소에 밀크를 넣고 밀크 거품이 얹어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물이 한잔 같이 나온다.

맛은 커피의 깊은 맛이 나는듯 하다.

커피를 먹고 나온 콜마르크트 거리.

원래 이거리는 14세기 목탄을 판매하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황실과 귀족을 상대로한 가게들이 생겨나면서 현재는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샵들이

포진해 있는명품 쇼핑 거리로 변모하였다.






가격표만 봐도 헉 소리나는 명품삽들이 즐비하다.

우리의 목적은 쇼핑이 아니므로 몽블랑 가게 한곳만 구경하고 다른 곳은 다 지나쳤다.



페터스플라츠(Petersplatz) 에 있는 페테스키르헤 성당

우리말로는 베드로 성당.


베드로 성당은 밖에서 볼때는 수수한 모습의 성당이고

그리 사람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성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교회가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중세초기에 건축된 교회유적이 새로 이 성당을 건설할때 지하에서 발견되었고

800년경 살레마뉴 대제가 건설했다고 하나 기록에는 1137년부터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된다.


안으로 들어오면 놀랍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부 장식들로 되어 있다.


조각들과 그림들로 화려한 장식이다.

이 교회는 중앙외에 제단이 두곳이 더 있다.






이곳에서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안녕과

이번 여행일정에 대해 짧게 나마 기도를 하였다.


매일 미사가 열리고 그중에는 라틴어 미사도 있다.


매주 음악회도 열린다고 한다.


베드로 성당을 나와서 멋진 조각상 앞에서 한컷,

새들이 자꾸 앉아서 인지 외부 조각상에는 이렇게 그물이 많이 쳐져 있다.


이름 모를 분수를 지나서


이제 슬슬 배도 출출하고 비엔나에서 점심을 먹을려고 가고 있다.


한식, 일식 전문점도 지나서 간곳은...


오스트리아 정통 식당인 퓨트스트네르.

비엔나에 있는 600여 식당중에 최고 리스트에 오르는 식당중의 하나이다.


안은 각종 동물들의 박제품도 많이 보이고 전통양식의 내부 장식이다.


여긴 예약석이었는데 포도주통으로 만든듯한 지붕이 보이고

그림도 그려져 있어서 특이했다.



관광객보다는 주로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의 점심시간보다 약간 일찍 간탓에 여기 저기를 둘러볼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럽고 아늑한 식당이다.



우리가 시킨것은 돼지 갈비 요리.


자그마치 이 갈비 두짝이 일인분이다.

세명이 가면 이인분 정도 시켜도 될만한 양이다.

단 둘이 가서 일인분만 시키는 것은 현지 관행상 좋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가이드까지 네명이라서 삼인분만 시켰다.


훈제로 구운 고기와 양념이 알맞게 어울려져

우리 입맛에도 맛았고 고기도 매우 부드러워 맛이 뛰어났다.


같이 제공되는 소스와 양배추를 곁들어 먹는다.

물처럼 먹는 맥주..

단 체코의 맥주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그곳맥주보다는 좋지 않다.



맛이 좋은 탓인지 다 먹고 가이드에게서 여러가지 좋은 얘기도 듣고

다음 일정을 위해 아늑한 식당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는독어로는 빈(Wien) 영어로는 비엔나(Vienna)라고 발음하고,

원래 현지 발음으로 해주는게 맞지만우리에겐 둘 다 혼용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엔나 소세지라고 하고 빈 소년 소녀 합창단이라고 한다.

그때 그때 다르니 나도 이번 여행기에서 편의대로 혼용하기로 한다.

어느덧 밤에 도착한 비엔나 숙소 근처에서 찍은 성당이다.

이곳 음악의 도시라 우리는 전문 가이드 안내를 내일 신청해 놓았다.

오늘은 내용은 모르고 그냥 기념으로 찍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짐을 풀고 숙소 근처 구경을

하다가 반가운 기네스 맥주 간판을 보고 아이리스 펍에 들어갔다.

1700년 당시 유럽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지 않은 물로 악명높았던 아일랜드에서는

사람들은 물대신 독한 진과 위스키를 마셨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때 아서 기네스란 사람이 등장하여 성직자들과 복음주의 교회들과 더불어

당시의 유독한 물과 음료를 대체하기 위해 양조한 맥주가 기네스 맥주의 기원이다.


1인 바텐더로 운영되는 이곳은 젊은 이들이 밤 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서빙하는 바텐더는 인상도 좋고 붙임성도 좋아서

음식을 시키니 늦은시간이라 준비가 안된다고 하고나서

자기 친구가 먹던 과자를 주었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네스 맥주는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흑맥주이다.

사실 지금은 팔아서 아무 연관이 없는 회사가 되었지만 기네스 맥주는 몰라도 기네스북은 모두가 알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흑맥주이다.

보통의 맥주와는 달리 쏘는 맛도 별로 없고 약간 쌉싸리한 맛과

제일 위쪽의 크림이 함께 어울려 좋은 맛이 난다.

이 맥주의 기원과 그것이 아일랜드 사회에 남긴 좋은 영향력과 아직도

후손들이 선조가 남긴 명성과 부를 여전히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뒷이야기도 감동스럽다.

아일랜드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성패트릭을 기리는 축제에서

가장 아일랜드를 대표하는이 맥주를마시면서 축제를 한다고 한다.


가게 이름도 Shamrock 으로 세잎짜리 토끼풀을 뜻하는 말로써

아일랜드 국장(國章)이다.

기네스 생맥주는 1 pint(파인트=약 550CC)에

4.8유로로 우리돈 7,500원 가량 한다.





오스트리아의 첫날 밤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찍은 거리 풍경들...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둘째날 아침,

맨 먼저 할일은 환전하는 일 아직 은행문은 안열었고

바로 옆 환전상에서 환전했다.

내가 갔던3월만 해도 아직 유럽 금융위기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유로 환율이 높았다. 지금은 좀더 떨어졌으리라.

3월에간 여행사진을 7월달에 올리니 현장감이 좀 떨어진다.ㅎㅎ...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슈페판 대성당은 외부 보수 공사중이었다.

(가림막의 그림으로 아쉽게 외부 모양을 볼수 있긴 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슈테판 대성당은

모짜르트가 결혼식과 장례식을 한 곳으로 유명하며,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슈페판의 이름을 땃다고 한다.

우리 성경 사도행전에서 돌로 죽임당한 나오는 스데반 집사일 것이다.

이 성당 내부는 나중에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정시에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는데굉장히 크고 웅장했다.


슈테판스플라츠 광장과 이어지는 비엔나 거리.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빵가게의 다양한 빵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하나 정도 사먹어 볼껄 그랬다.


오스트리아의 특징인야외 까페

봄이 되면 모든 카페가 이렇게 테이블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카페의 특성이며 모든 유럽 카페문화의 앞잡이라고 한다.



교향곡의 나라답게 구스타프 말러를 기리는 상징물이 길에 있다.

그는 교향곡을 새로운 발전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일컫어진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일컬어 지는 슈타츠오퍼 국립 오페라 극장이다.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건물에는 이렇게 건축년도와 이름을 새긴 상징물이 같은 모양으로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건립년도가 두가지로 표시되어 있는데

1861~1869 와 1945~1955 이다.

최초 개관기념 공연은 모차르트의 돈지오바니 였고 1945년은

년도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2차 대전 막바지때 미군의 오폭(포병의 계산 착오)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다행히 건물 앞부분과 주 계단이 남아서

다시 10년간에 걸쳐서 복원한 것이다.

오늘밤 이곳에서 사랑의 묘약표를 예매해놓았기에 여기도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갈 곳으로 향했다.

지상 전차인 트램길과 마차와 자동차가 어울려

다니고 있는 모습에 이국적인 느낌이 더 다가 왔다.



슈타츠오퍼에서 호프부르크로 이어지는 대로가 오페른링인데

그곳에 세워져 있는 괴테의 동상

시인, 소설가, 극작가, 정치인, 철학가로 유명한 독일인의 동상이

여기에 있는 것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인의 존경심을 발현이다.

실제로 그는 비엔나를 방문하여 오랫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황궁정원


높은 음자리표의 화단으로 꾸며진 동상..

주인공은 바로 음악의 신동으로 불려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이다.

오소트리아 짤츠부르크 태생으로 36세로 요절한 천재 작곡자이며

어릴때 아마데우스 영화를 본 기억이 아직도 나는데

그를 동상으로나마 그의 고향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황궁정원의 이모저모..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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